[ 남천성당 피정 후기 ]
지난 6월 8일, 부산 남천 성당에서 열린 성체조배회 1일 피정에 다녀왔습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온전히 하느님과 마주했던 그 고요하고 찬란했던 시간의 기록을 남겨봅니다.
1.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대화
아침 햇살이 남천성당의 십자가를 하얗게 비추던 순간, 나는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열었습니다.
성체 앞에 조용히 앉아 있자니, 번잡했던 세상의 소음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한 평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묵상 중에 잔잔히 들려오는 성가의 음률은 마치 하늘이 내게 속삭이는 따스한 위로 같았습니다. 기도는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깊은 대화였습니다. 그 고요한 침묵이 내 마음 구석구석을 비추며,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마음의 상처들을 부드럽게 감싸안아 주었습니다.
오후가 되어 성당을 채우던 빛이 조금씩 누그러질 때, 마음속에 하나의 깨달음이 스쳤습니다. 하루의 피정은 현실 도피나 단순한 머무름이 아니라, 다시 내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기쁘게 나아가기 위한 준비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날 얻은 고요는 내 마음속에 작은 등불이 되어, 앞으로의 삶의 길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빛으로 남을 것입니다.
2. 천상의 정원, 남천성당
부산의 시원한 바닷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도심 한가운데, 남천성당은 거대한 빛의 집으로 서 있습니다. 가로 60미터, 세로 27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스테인드글라스 외벽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무수한 색의 파편으로 흩어지며, 성당 내부를 마치 천상의 정원처럼 황홀하게 바꿔 놓습니다.
그 빛은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교자들의 붉은 피와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흘린 기도의 눈물이 스며든 신성한 색채이며, 정하상 바오로의 이름을 새긴 영원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빛은 두터운 벽을 넘어 신자들의 마음에 부드럽게 닿아, 묵상과 평화의 길을 활짝 열어줍니다.
남천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의 위대한 예술입니다. 돌과 유리, 곡선과 직선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다리가 되고, 삭막한 도심 속에서도 신성한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성당 앞에 서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예술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깊이 느끼는 것임을. 남천성당은 그 위대한 진리를 온몸으로, 빛으로 증언하는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3. 닿을 수 없는 곳에 새겨진 신앙의 초석, 상재상서(上宰相書)
남천성당의 주보성인은 성 정하상 바오로입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인자하면서도 굳건한 모습의 정하상 바오로 상이 신자들을 맞이합니다.
문득 성인상 좌대의 옆면과 후면에 깊게 음각된 한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으로 전면과 양옆면은 담을 수 있었지만, 뒷면은 성당 건물 벽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접근하기 어려웠다.
눈으로도 온전히 읽기 힘들었지만,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상재상서(上宰相書)의 내용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성상 후면과 옆면, 성당의 두터운 벽과 마주한 채 묵묵히 새겨져 있는 이 한문 글귀들을 바라보며 묘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향해 목숨을 바쳤던 성인의 굳건한 신앙이, 성당의 보이지 않는 기초가 되어 이 거대한 빛의 성전을 떠받치고 있는 듯했습니다.
4. 상재상서(上宰相書)-한문 원문은 접는 글 더보기에
상재상서'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성인이 체포되기 직전, 당시 우의정이던 이지연에게 올린 한국 최초의 천주교 호교론서(護敎論書)입니다.
곧 닥쳐올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담대하게 천주교 교리의 정당성을 밝히고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던 피 끓는 명문장입니다.
1. 천주(하느님)를 섬겨야 하는 근본 이유 [영원한 가치에 대한 갈망]
"하늘과 땅 사이에 큰 부모가 계시니 '천주(하느님)'라 부릅니다. 우리의 육신을 내시고 영혼을 기르시며 목숨을 돌보시니 그 은혜가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이미 천주가 계심을 알진대 어찌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섬기는 도리는 오직 계명을 따르고 받드는 데 있으니, 계명의 요체는 곧 천주를 사랑하고 사람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2. '부모와 임금도 모른다(無父無君)'는 [오해에 대한 반박]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일컬어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다'고 하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계명 제4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라' 하였으니, 어찌 천주를 섬기면서 도리어 그 부모에게 불효할 리가 있겠습니까? 또 임금은 천주께서 명하신 바입니다. 임금의 명령을 어김은 곧 천주의 명령을 어김이니, 어찌 천주를 섬기면서 도리어 그 임금에게 불충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보다 더 크신 분이 계시고 임금보다 더 존귀하신 분이 계시니 곧 천주이십니다."
3.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앙을 지키겠다는 결개 [결론:신앙의 자유 호소]
"칼과 톱이 앞에 있을지라도 단단코 마음을 변치 않을 것이요, 도끼가 뒤에 있을지라도 단단코 도(道)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신앙을 너그러이 허락하시어 백성들의 원망이 없게 하소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였으니, 우리들은 비록 죽을지라도 한이 없습니다."
피정 동안 성체 앞에서 느꼈던 그 침묵 속의 대화와 잔잔한 평화는, 180여 년 전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이 글을 내려써 내려갔던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깊은 평화와 닿아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도심 속 빛의 성전에서, 내 영혼의 등불을 다시 밝히고 돌아온 은혜로운 하루였습니다.
상재상서(上宰相書)
1. 한문 원문
天地지間에 有大父母하니 曰天主시라. 生吾體하시고 養吾魂하시며 護吾命하시니 恩莫大焉이라. 旣知其有天주인댄 豈可不事리오? 事之之道는 唯在於遵奉誡命이니 誡命之要는 卽愛天主하고 愛人如己라.
2.한문 원문
世人이 謂吾輩爲無父無君이라하니 此何言也오? 誡命第四에 曰孝敬父母라하니 豈有事天主하면서 而反不孝其父母者哉아? 且人君은 天主之所命也라 違君命은 卽違天主之命이니 豈有事天主하면서 而反不忠於其君者哉아? 然이나 有大於父母者하고 有尊於人君者하니 卽天주是也라.
3. 한문 원문
刀鋸在前이라도 斷不敢變心이요 斧鉞在後라도 斷不敢易道라. 願賜一敎之寬하사 使無生民之怨하소서. 朝聞道면 夕死라도 可矣라하니 吾輩는 雖死나 恨無矣로소이다.

광안성당 교우들과 나누는 피정 기념 성가 가사
이번 남천성당 피정의 은혜를 기억하며,
가톨릭 교우들과 함께 들을 수 있는
하나뿐인 성가를 Suno AI로 구현해 보았습니다.
첨부된 음원과 함께 아래 가사를 음미해 보세요.
바닷바람 스쳐가는 도심의 한가운데
거대한 빛의 집, 남천 성전 위에
아침 햇살이 십자가를 비추던 그 시간
광안의 교우들과 기도로 문을 열었네
세상의 소음들은 서서히 멀어지고
성체 앞 깊은 고요, 잔잔한 평화 가득해
말이 없는 침묵 속에 피어나는 대화
오래된 상처들을 주님이 감싸주시네
오, 주님 고요한 내 앞에 오시어
눈물을 닦으시고 등불을 밝히시네
정하상 바오로의 굳건한 신앙처럼
우리의 걸음마다 주님의 빛이 되소서
가로 육십 미터의 스테인드글라스
하늘의 정원 되어 우리를 감싸네
단순한 머무름이 아닌 세상으로 나아갈 힘
광안 공동체 마음에 작은 빛으로 남으리
영혼으로 느끼는 천상의 노래
주님 안에 하나 된 우리
언제나 이 고요 속에 머물게 하소서
아멘.
[Verse 1]
바닷바람 스쳐가는 도심의 한가운데
거대한 빛의 집, 남천 성전 위에
아침 햇살이 십자가를 비추던 그 시간
광안의 교우들과 기도로 문을 열었네
[Verse 2]
세상의 소음들은 서서히 멀어지고
성체 앞 깊은 고요, 잔잔한 평화 가득해
말이 없는 침묵 속에 피어나는 대화
오래된 상처들을 주님이 감싸주시네
[Chorus]
오, 주님 고요한 내 앞에 오시어
눈물을 닦으시고 등불을 밝히시네
정하상 바오로의 굳건한 신앙처럼
우리의 걸음마다 주님의 빛이 되소서
[Bridge]
가로 육십 미터의 스테인드글라스
하늘의 정원 되어 우리를 감싸네
단순한 머무름이 아닌 세상으로 나아갈 힘
광안 공동체 마음에 작은 빛으로 남으리
[Outro]
영혼으로 느끼는 천상의 노래
주님 안에 하나 된 우리
언제나 이 고요 속에 머물게 하소서
아멘.
Catholic worship hymn, ethereal choir, ambient cinematic, acoustic guitar, piano, solemn, peaceful, emotional, K-pop ballad female/male vocal
(가톨릭 예배 성가, 천상적인 합창, 잔잔하고 영화 같은 분위기,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엄숙하고 평화로우며 감동적인 한국 성가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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