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거친 돌강 위에서 실존을 묻다
주일 미사와 평일 미사 참례를 위해 매일같이 디디는 광안성당 마당과 수영 장대골 순교성지.
우리 집 앞마당처럼 익숙하고 평온한 그곳을 벗어나, 오늘은 오랜 신앙의 길동무 형제님과 함께 장산의 거친 품으로 향했다.
반산초등학교 정류소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이내 장산의 웅장한 '너덜겅 두 골짜기'로 이어졌다.
약 7천만 년 전 백악기 화산 활동이 남긴 거대한 돌강. 단단하고 불규칙한 바위들이 끝없이 흘러내린 그 길은, 요령이나 지름길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실존의 현장이었다
72세와 82세. 두 노년의 길동무가 거친 바위 위에 발을 디딜 때마다, 서로의 안위를 살피는 숨소리가 고요한 골짜기를 채웠다.
"남의 눈은 속여도 제 눈은 속일 수 없다"는 다짐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 안의 양심과 나약함을 마주하며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성당 골목길에서 시작된 복된 인연 돌이켜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가 성당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그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제대 앞에서 미사를 드리고, 같은 주님을 고백하며 신앙의 깊은 강물 속을 함께 헤엄쳐 왔다.
너덜지대의 험준한 바윗길을 지나 숨을 고를 때, 시야가 완전히 트이며 광안대교와 해운대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장엄한 조망 속에서 깨달았다. 우리가 지나온 30년의 세월 역시 이 거친 너덜길과 같았음을. 때로는 비틀거리고 때로는 숨이 찼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늘 함께 계셨던 주님의 은총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까지 걸어올 수 있었음을 말이다.
2. 성불사의 정적을 지나 도심의 빛으로
거친 골짜기를 무사히 건너 호젓한 산사 성불사의 마당을 경유해 하산하는 길, 마음속에는 깊은 평화가 피어올랐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 18,20)
오늘 장산의 너덜겅은 우리에게 단순한 등산로가 아닌, 서로의 삶과 양심을 투명하게 비추어 본 또 하나의 거룩한 순례길이었다.
늘 곁에서 든든한 신앙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형제님께, 그리고 이 복된 걸음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올린다.
성불사로 내려오는 하산길, 주님께서는 우리 두 노형제의 완주를 축복하시듯 정교하고도 따뜻한 은총의 설계를 미리 마련해 두고 계셨다.
산자락을 내려오니 나의 아들과 두 손자가 반가운 얼굴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손자들의 환한 웃음을 보며 승용차에 오르면서도,
홀로 벡스코역으로 향하신 82세 장 성언 요셉 형제님의 발걸음이 내심 마음에 밟혔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기우에 불과했다.
같은 시각, 역 입구를 찾으며 조금 걸어 내려가시던 요셉 형제님 뒤로 귀를 의심케 하는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형님! 이 시간에 여기서 어쩐 일이십니까?"
놀라 돌아보니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광안동 동네 지인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형제님을 알아보고 차를 멈춰 세운 것이다.
"형님, 어서 타십시오!" 하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요셉 형제님 역시 지인의 승용차로 편안하게 집까지 귀가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들과 손자의 따스한 마중, 그리고 거친 길을 걸어온 노형제를 위해 길목에 미리 서 계셨던 동네 지인의 우연 같은 필연.
오랫동안 신앙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온 우리 동네 광안동의 따스한 정이 장산 자락까지 이어져 있었다.
부산도시철도 벡스코역에서 마감하려던 우리의 오늘 도보는, 결국 각자의 집 앞마당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완벽한 돌봄 속에서 끝이 났다. 성당 골목길에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처럼, 오늘 장산 너덜길의 마지막 순간 역시 인간의 계산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정교한 은총의 연속이었다.
"남의 눈은 속여도 제 눈은 속일 수 없다"며 늘 양심을 옷 입고 살아온 두 노병에게,
주님께서 보내주신 오늘의 천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바람이 나 하나 흔들자고 불지는 않았으리

성불사 하산길, 초록이 우거진 철망 펜스 한편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글판 하나를 만났다.
박선미 시인의 시 '흔들리는 둥지'의 한 구절이 정성스러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바람이 나 하나 흔들자고 불지는 않았으리
봄비가 나 하나 적시자고 내리지는 않았으리"
그 문장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는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돌이켜보면 삶의 고비마다 불어왔던 모진 바람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자연의 바람이 어디 나 한 사람만을 흔들기 위해 불었으랴.
나의 나약함과 교만을 흔들어 깨우고, 더 깊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려던 주님의 숨결이었음을 깨닫는다.
30년 지기 장성언 요셉 형제님과 함께 이 하산길에서 마주한 시구는, 오늘 장산의 거친 돌강을 건너온 우리 두 노병의 어깨를 따스하게 토닥여주는 하늘의 위로 같았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 8,28)
손해인 듯 살고 보니 큰 손해는 없었다

철망 펜스길을 조금 더 따라 내려오다, 오늘 도보의 여정을 온전히 관통하는 또 하나의 묵직한 글판을 마주했다.
"손해인 듯 살고 보니 큰 손해는 없었다"
거칠고 투박한 글씨체 속에 담긴 이 한마디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거울처럼 비추어 준다.
세상은 늘 영악하게 계산하고, 남보다 앞서가며, 절대로 손해 보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미사와 성체조배를 드리며, 그리고 복음의 말씀에 따라 조금은 미련해 보일지라도 "내 탓이오"를 고백하며 손해 보는 이의 자리에 서고자 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양심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감내했던 세상의 손해들. 하지만 주님의 저울은 세상의 계산법과 달랐다. 성불사 하산길의 끝자락에서, 주님께서는 우리 두 노형제의 완주를 축복하시듯 정교하고도 따뜻한 은총의 설계를 선물해 주셨다.
산자락을 완전히 내려오니 나의 아들과 두 손자가 반가운 얼굴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손자들의 환한 웃음을 보며 승용차에 오르면서도, 홀로 벡스코역으로 향하신 82세 장성언 요셉 형제님의 발걸음이 내심 마음에 밟혔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기우에 불과했다.
같은 시각, 역 입구를 찾으며 조금 걸어 내려가시던 장성언 요셉 형제님 뒤로 귀를 의심케 하는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형님! 이 시간에 여기서 어쩐 일이십니까?"
놀라 돌아보니 지금 함께 정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광안동 동네 지인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형제님을 알아보고 차를 멈춰 세운 것이다. "형님, 어서 타십시오!" 하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요셉 형제님 역시 지인의 승용차로 편안하게 집까지 귀가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돌이켜보니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손해가 아니었다.
세상 눈에는 손해처럼 보이는 좁은 문과 거친 너덜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하느님께서는 비어낸 자리에 30년 지기 장성언 요셉 형제님은 영혼의 동반자를 채워주셨고,
오늘 하산길에는 가족과 동네 지인의 따스한 정까지 아낌없이 예비해 주셨다.
"Cogito, ergo sum."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
오늘도 나는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이 정직하고 복된 양심의 길을 신앙의 동반자와 함께 걸을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하며 행복한 도보의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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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ing About Existence on the Rocky Riverbed
Every day I step into the familiar grounds of Gwang-an Catholic Church and the Suyeong Jangdaegol Martyrs’ Shrine for Mass. But today, I left that peaceful courtyard behind to venture into the rugged embrace of Jangsan Mountain with a long-time companion in faith.
Our journey began at the Bansan Elementary School bus stop, soon leading us into the majestic “rocky ravine” of Jangsan. This vast river of stones, formed by volcanic activity some seventy million years ago, allowed no shortcuts—only the raw confrontation with existence itself.
At seventy-two and eighty-two years of age, we placed our feet carefully on the jagged rocks, our breathing filling the quiet valley as we watched over each other’s safety. Guided by the resolve that “one may deceive the eyes of others, but never one’s own,” I moved forward step by step, facing my conscience and weakness.
Looking back, nearly thirty years have passed since we first met in the alley by the church. We have shared countless Masses before the same altar, confessing the same Lord, swimming together in the deep waters of faith.
When we paused to catch our breath, the view opened wide—Gwang-an Bridge and the blue sea of Haeundae stretched before us. In that panorama, I realized: our thirty years together were like this rocky path. Though we stumbled and grew weary, we reached this place because we had each other, and because the Lord’s grace was always with us.
Through Seongbul Temple’s Stillness into the City’s Light
Crossing the ravine safely, we passed through the quiet courtyard of Seongbul Temple. Peace blossomed within me. The words of Matthew came alive: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in my name, there am I among them.”
Today’s rocky trail was not just a hike—it was a sacred pilgrimage, reflecting our lives and consciences in transparent light.
Descending the mountain, my son and two grandsons greeted me with radiant smiles. Yet my heart lingered on Brother Joseph, who walked alone toward BEXCO Station. My worry proved needless: a neighborhood friend recognized him, stopped his car, and joyfully drove him home.
The warmth of family and the kindness of neighbors revealed the Lord’s providence. What seemed like coincidence was, in truth, a carefully prepared blessing.
A Poetic Whisper on the Path
On the descent, a handwritten verse from poet Park Sun-mi caught my eye:
“The wind did not blow just to shake me. The spring rain did not fall just to drench me.”
Reading aloud, I felt a quiet tremor within. Life’s storms had often seemed cruel, but they were never meant for me alone. They were the breath of God, shaking my pride and weakness, rooting me deeper in faith.
Living as if Losing, Yet Losing Nothing
Further down, another inscription appeared: “Living as if losing, I found I lost nothing.”
The rough handwriting mirrored my life. The world teaches us to calculate, to avoid loss, to always be ahead. Yet in the Eucharist and confession, I often chose the place of apparent loss, whispering “It is my fault.”
In truth, those sacrifices were no loss at all. God’s scales differ from the world’s. He filled the empty spaces with a faithful companion of thirty years, with family waiting at the mountain’s foot, and with neighbors offering unexpected kindness.
Conclusion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 Today, I walked once more in the Lord’s providence, grateful to journey this honest and blessed path of conscience with my brother in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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