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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티브 잡스 (Steve Jobs)'생애,업적,어록, 연설문
    카테고리 없음 2024. 2. 12.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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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 (Steve Jobs)'생애,업적,어록, 연설문

    1. 출생 및 성장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리아계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부와 생모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이들은 잡스가 태어나자마자 입양을 보냈고,
    이후 잡스는 양부모 밑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고아라고 또래 아이들이 놀리는 바람에 스티브 잡스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대신 차고에서 안 쓰는 부품들을 모아 무엇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잡스는 천재성을 보이지 않는, 부모 속을 많이 태우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잡스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전자공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휴렛팩커드에 인턴으로 채용되었고, 이곳에서 애플의 동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게 됩니다.

    2. 애플의 탄생

    스티브 잡스는 우연한 기회로 아타리라는 게임회사에 게임 디자이너로 취직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잡스는 컴퓨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동업자인 워즈니악이 운영하는 손수 컴퓨터를 만드는 클럽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후 잡스는 컴퓨터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워즈니악과 함께 본격적으로 컴퓨터 제작에 착수,

    1976년에 애플(Apple) 컴퓨터를 창업하게 됩니다.

    처음 애플을 개발했을 당시에는 pc라는 것이 어떤 것이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고,

    정부기관이나 대학 등 일부 기관에서만 pc가 사용되는 정도였기에 대량생산 없이 동네상점에 영업망을 뚫어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이후 AppleⅡ, AppleⅡ Plus 등 후속 모델들이 차례로 성공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명성과 부를 얻게 되었습니다.

     

    3. 열정과 고난

    스티브 잡스는 그의 동업자들과 함께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등을 연이어 개발하며 혁신적인 제품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그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과 직관능력은 시장에 내놓은 제품마다 성공하게 하는 밑거름의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1985년, 애플에서의 내부 갈등으로 그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떠나야만 했고, 이후 그는 넥스트와 필사를 창업하기도 하였습니다.

     

    4. 애플로의 귀환

    1997년, 스티브 잡스는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애플은 무려 1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할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잡스가 경영권을 잡은 지 1년 만에 3억 달러 흑자로 돌아서는 기적을 창출해 냅니다.

    이후 그의 창조적인 리더십으로 다시 애플은 성장가도의 길로 들어서게 되며, 2000년 마침내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CEO로 취임하게 됩니다.

     

    5. 스티브 잡스 업적 (아이폰 출시와 스마트폰 혁명)

    스티브 잡스는 그의 기업인 애플과 픽사를 통해 업계를 혁신하고 세상을 변화시킨 일련의 업적을 성취했습니다.

    • 애플 컴퓨터 창업: 잡스는 1976년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컴퓨터를 창업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차고에서 애플 I을 제작하고 판매했고, 이로써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 매킨토시 컴퓨터: 1984년, 잡스는 애플 매킨토시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첫 번째 상업적으로 성공한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컴퓨터였습니다. 이 컴퓨터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데스크톱 컴퓨터의 모습을 정의했습니다.
    •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1986년에 잡스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인수했습니다. 픽사는 첫 번째 전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를 제작하였고, 이후에도 수많은 흥행 애니메이션을 선보였습니다.
    • 애플의 부활과 아이팟: 1997년에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애플의 회생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디지털 음악 시장을 개척하면서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선보였습니다.
    • 아이폰과 스마트폰 혁신: 2007년, 잡스는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스마트폰 산업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아이폰은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와 앱 스토어 등을 도입했으며, 이는 모바일 기기의 새로운 표준을 설정했습니다.
    • 아이패드: 2010년에는 아이패드를 출시하여 태블릿 컴퓨터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 산업의 중요한 파트를 혁신하였습니다. 
    • 잡스는 그의 삶과 커리어를 통해 기술, 디자인,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고, 이로 인해 그는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사고와 비전은 여전히 세계를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6 스티브 잡스 명언 및 어록

    1.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잠식하게 하지 마십시오.
    2.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를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들은 어떻게 든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 싶은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입니다.
    3.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당신의 영웅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4. 때때로 인생은 벽돌로 머리를 때릴 것입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를 계속 버틸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5.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세요.
    6. 성공의 무거움은 다시 초심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7. 나는 약 6개월 전에 빌 게이츠가 한 말을 읽었습니다.
      그는 20대에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저도 20대에 정말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압니다.
      문자 그대로, 일주일에 7일, 매일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할 수없고, 영원히 하고 싶지도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더 많이 모색해야 합니다.
    8. 집중과 단순함이라는 것이 제 진언 중 하나였습니다.
      단순한 것을 복잡한 것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거기에 도착하면 산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가치가 있습니다.
    9.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파워포인트가 필요 없다.
    10. 최고의 경영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관리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자신만큼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훌륭한 개인 기여자들입니다.

    7. 암 투병, 그리고 사망

    전성가도를 달리던 스티브 잡스는 2004년 8월 췌장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됩니다.

    췌장암 수술 이후에도 그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애플의 제품 개발에 힘썼으며, 그의 뛰어난 비전과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8. 스티브 잡스의 성공철학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졸업 연설문을 낭독합니다.

    이 연설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었고, 그이 삶과 경험을 공유한 훌륭한 메시지였습니다.

    이 연설문은 "Stay Hungry, Stay Foolish(배고프고 어리석움을 유지하라)"라는 주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 스티브 잡스의 사망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지만, 그의 유산은 우리 생활의 많은 면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비전과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력은 오늘날 기업가와 발명가, 디자이너에게 계속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기여로 인해 우리의 삶은 영원히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연설문 전문을 영어원본과 번역본으로 함께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9. 연설문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 2/2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a prepared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delivered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on June 12, 2005.

     

    Thank you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nt for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오늘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age.

    사실을 말한다면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an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age graduation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ting the dots.

    첫 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 ,

    전 리드대학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orp-in for another 18 month or so before i really quit

    그래도 일 년 반 정도는 몰래 수업을 듣다가 결국에는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제가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올라갑니다.

    My biological mother was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 to put me up for adoption

    저의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고 그녀는 저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저의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저의 미래를 위해서 모든 걸 걸고서 말이죠.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저는 태어나면서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Expec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들은 여자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got a call in the middlle of the night asking

    대기자 명단에 있던 나의 양부모님은 한 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to him?

    예상밖으로 남자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를 입양하시겠습니까?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그들이 말했다.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age and

    나의 생모는 나중에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란 걸 알았고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녀는 마지막 입양동의서에 사인하기를 거절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그녀는 우리 양부모님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화를 풀었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하지만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스탠퍼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on my college tuition.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두었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 ,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에, 난 대학에 다니는 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decisions I ever made.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 없던 필수과목 대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관심 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한 병당 55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Hare Krishna temple.

    또 매주 일요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고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learn how to do this.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ItI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 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life.

    사실, 이때만 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clear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힘이 되어줬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 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2백억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초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통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5년 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 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왜냐고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10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이란 삶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시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때가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엄지 들고/ 차를 유혹해서 빌려 타며 여행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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